Monday, August 24, 2009

Blue Museum, White Museum

8월 들어 미술관만 두 군데를 다녀왔습니다. 주말마다 날씨가 유난히 덥거나, 아니면 비가 와서,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 중에서 갈 곳을 고르다보니, 뮤지엄만한 곳이 없더군요.

몇 주 전, 비가 오는 일요일에는 Metropolitan Museum에 갔었는데, 다들 저희처럼 비를 피해 왔는지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여지껏 가본 중에서 갤러리의 인구밀도가 제일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때엔 대개 한적했던 현대미술이나 아시아 고미술 섹션조차도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덜 보고 자유롭게 노닐곤 하던 카이와 테이트에게 이번 방문은 그다지 즐거운 시간은 되지 못했습니다.

원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아이들 놀이터로 참 좋은 곳입니다. 늘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실내이고, 워낙 규모가 커서 대개 어디엔가는 붐비지 않는 한적한 갤러리들이 있기 마련이고, 다양한 시각적 자극이 있고, 모르긴 해도 무의식적이나마 예술적인 감각에 대한 교육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특별전만 아니라면 사진 찍는데도 제약이 없고, 엄마아빠에게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장료가 거의 공짜입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무료는 아니고, recommended admission은 요새는 많이 올라서 20불씩이나 하지만, 그건 글자 그대로 그들이 '권하는' 가격일 뿐이고 June은 늘 '한 장'으로 해결하곤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차로 약 1시간 남짓 거리의 북쪽의 시골마을에 있는 Dia:Beacon에 다녀왔습니다. Dia는 Manhattan Chelsea에 있는 유명한 갤러리인데, 여기는 그 분점인 셈이죠. 사이즈 면에서나 작품의 수준 면에서나 갤러리라기보다는 뮤지엄에 가까운 곳인데, 그 날 아침에 또 뮤지엄에 가자고 하니까 카이가 그러더군요. "블루 뮤지엄 시러, 화이트 뮤지엄 조아." 블루 뮤지엄이 뭐냐고 물어보니, 거기에는 "빨개벗은 애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몇 주 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을 때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갤러리 벽이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되어있던, 아기예수 그림이 있던 중세/고전미술 섹션은 싫었고, 하얀색 벽으로 되어있던 현대미술 섹션이 마음에 들었었나 봅니다. 평소 카이의 행동으로 미루어 그 이유를 짐작해보면, 'blue museum'에서는 시커먼 배경 위에 그려진 사람들이 무서웠던게 틀림 없습니다. 관객이 많아서 유모차에 묶여 있어야 하기도 했었고... 암튼 결론적으로 아빠와 그림보는 취향이 비슷합니다. 다행히 Dia:Beacon은 현대미술 작품으로만 채워진, 갤러리 벽이 하얀색인 뮤지엄이라 "오늘은 새로운 화이트 뮤지엄에 가는거"라고 얘기해 주었더니, 카이도 그곳에 방문하는 것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이 날, 카이와 테이트는 넓고 여유로운 갤러리 안에서, 그리고 뮤지엄 앞뜰의 잔디밭에서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이제 테이트도 거의 넘어지는 일이 없이 뛰어다닙니다. 어두컴컴한 조명이나 좀 이상하게 생긴 작품을 보면 일단 다가가기를 거부하는 카이와는 달리, 도무지 겁이라는걸 모르는 테이트는 때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때로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 같기도 하고 감탄사 같기도 한 비분절음들을 연발하면서 뮤지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미소와 함께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거기다 손까지 흔들어 줍니다. 그 모습이 아빠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객관적으로 본다는게 불가능하긴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귀여워서, 원래 갤러리 내에서 사진을 찍는게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몰래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8월에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링크입니다. 두 군데 뮤지엄에서 찍은 사진들 이외에도, 작은 기차모형들을 만들어 전시해놓은, 약간은 기이한 느낌을 주었던 Northlandz와, 쇼핑몰의 몇몇 스토어에서 찍은 사진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Thursday, August 20, 2009

인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제가 기억하는 첫 직선제 대통령선거가 있던 87년이었습니다. 저는 경기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그는 기호3번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잠실 어느 공터에서 열린 그의 유세장을 혼자 찾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 본 정치집회였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노란색 트럭으로 만든 무대 위에서 그가 하는 연설을 군중 속에서 들었는데, 사실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TV에서 그의 목소리를 몇 초 이상 들려주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좀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 기사에 그의 이름조차 쓸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연설을 듣고 제가 받은 첫 인상은 참 촌스럽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이전까지는 제가 별로 들어볼 일이 없었던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유세장 주변의 노점상들이 파는 연설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사가지고 집에 와서 틀으니까, "사투리 억양이 참 강하구나"라며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저희 집안이 호남 출신도 아니고, 부모님이 그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제 주변에 운동권 형이나 누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당시 저는 이미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몇해 전 중학생 시절 우연찮게 그의 이름을 들은 이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조금씩 단편적이나마 알게 된 그의 생각에는 열여섯 살 소년이 당시의 세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정의로운 목소리가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치인을 가지게 되었고, 첫사랑이 대개 그렇듯 참 뜨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전두환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의 서점에서 그의 책을 산다는 것은 조금은 가슴떨리고 조금은 위험한 일이었는데, 아직은 어린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읽었던,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아놓은 책에 실린 원본 편지 사진의 깨알같은 그의 글씨를 보고, 그런 내용의 편지를 그런 글씨로 쓰는 사람이라면 더욱 괜찮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비둘기로 만든 평화민주당 로고와 글꼴(왼쪽 사진에 보이는)을 당시의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로고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어했고, 강렬한 노란색으로 만든 아이덴티티도 참 좋아했습니다. 신문 1,2,3,4면 하단에 나란히 순서대로 실린 각 정당 선거광고 중에서도 기호 3번의 광고가 가장 세련되어 보여서 흐뭇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 후보가 훌륭하니까 그런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서 잘 만들었구나' 뭐 그런 식으로 오버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20년이 넘은 지금, 디자이너의 눈으로 다시 봐도 그리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군요.

두번째로 그를 본 건 그로부터 몇년 후, 제가 다니던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였습니다. 당시 저랑 같은 91학번 신입생이었던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어서 시국이 시끄럽던 때였습니다. 날마다 종로와 명동거리에서는 시위가 벌어졌고, 저녁마다 백양로에서는 최루탄을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검정색 차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옷에서 최루탄 냄새가 좀처럼 가시질 않던 어느 늦은 봄날,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 교내에서 열리는 무슨 집회에 갔는데, 그날따라 신문에서 보던 국회의원과 재야인사의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가 싶더니, 당시 야당 총재였던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가 짧은 연설을 했었는데, 무슨 내용의 연설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그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는구나' 하는 반가움과, 오랜 시간동안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던 탓에 다리가 무척 저리던 기억 뿐.

그를 대통령으로 가지고 싶었던 열여섯 살 소년의 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나 이루어졌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던 날, 목놓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10년 동안 그를 외로이 좋아하면서 쌓여온 제 나름의 恨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취임식이 열리던 순간에 저는 이미 뉴욕에 와 있었습니다. 뉴욕에 온 첫 해, 저는 서울로 치면 명동성당쯤에 해당하는 St. Patrick's 성당에서 견진을 받고, 매주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렸는데, 어느 일요일 미사 시작 전에 안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뉴욕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미사를 드리러 왔다는... 많은 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을 했습니다.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난 후, 성당 뒷문 쪽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가 뉴욕대교구 추기경과 함께 문을 열고 나와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저와 그의 눈길이 마주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제가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순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