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 뉴욕 맨하탄 32가 거리에서는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습니다. 다음날 중앙일보 인터넷판에는 뉴욕에서 100명이 모였다는 기사가 실렸지만, 사실 그날 저녁 조문록에 글귀를 남긴 사람만도 300명이 넘었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숫자지만,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집회로는 뉴욕 한인사회 역사상 최대규모일거라고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스타일의 젊은 여자들부터, 평생 조선일보만 읽었을 것 같은 인상의 할아버지, 아이들을 데려온 많은 엄마들, 백인 남편과 함께 와서 눈물을 쏟던 한인 아내, 우연히 길을 지나다, 신문에서 기사를 읽었다며 자리를 함께 한 백인부부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의 떠남을 아쉬워했습니다.
한인타운 모퉁이의 자그마한 광장에서 하는 것으로 뉴욕시에 집회신고를 했는데, 행사 전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으니까 그 앞 빌딩의 경비원이 나오더니 그 광장의 대부분의 구역이 private property라고 당장 치우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더군요. arrested될 거라고 겁을 주면서. 이미 사람들은 모여들고, 장소를 옮길 곳은 마땅치 않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진짜로 경찰이 왔습니다. 근데 경찰이 양쪽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하더니, 행사의 성격 때문이었는지, 추모객의 숫자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신고한 쪽을 설득하더군요. 빌딩 측과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저에게 와서는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하라고... 대한민국 경찰의 몰상식한 행태에 기막혀하다가 만난 NYPD officer는 인상적일만큼 그렇게 달랐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함께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저는 오히려 흐뭇함이랄까, 카타르시스랄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이 느껴지더군요.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를 편드는 일은 참 외롭고 서럽고 아픈 일이었는데... 언젠가는 반드시 올거라 믿었지만 이처럼 빨리 올 줄은 몰랐던 기적같은 반전이 그 힘들었던 기억들을 새로운 빛깔로 바꾸어 준 것 같습니다.
함께 행사를 준비했던 사람들과 뒷풀이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9년 전, 평소 안쓰럽게 생각해왔던 한 원외정치인에게 힘이 되어주자는 '노사모'라는 낯선 이름의 모임에 가입을 한 이래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꿈같이 느껴지더군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은... 젊은 날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추억거리 하나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느낌.
그 날 밤, 사람들과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유시민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마침 다음날 인터넷에는
그의 글 하나가 퍼지고 있더군요. 진심이 어린 글이라서일까요?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들의 생일에 곧잘 선물하던 '광대의 경제학'에서 읽었던 정운영의 글 이래, 요즘 유시민이 쓰는 글처럼 가슴에 와 닿는 글은 처음인 듯 싶습니다. 그의 글에서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느꼈던 행복감이...' 하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 이젠 좀 진정되었나 싶은 눈물을 또 속으로 삼킵니다.
...
나는 님 덕분에 아주 행복하고
님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더는
님 때문에 울지 않을 거예요.
님을 왜 사랑했는지 이젠 말할 필요가 없어서
님을 오래 사랑했던 나는 행복해요.
...
—유시민, '님을 보내며' 중에서
영결식을 앞두고 그가 종이에 펜으로 쓴 글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이렇게 멋진 글에 담아내는 그가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