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30, 2008

Kai says no



카이가 말을 합니다. 기초적인 낱말들을 말하기 시작한건 꽤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낱말들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엄마 아빠와 기본적인 communication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아주아주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엄마", "맘마", "아빠"(카이가 아빠를 부르는 동영상 링크)를 말하기 시작한건 돌 전부터구요. 몇달 전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먹을 것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연어" (놀랍게도 이게 카이가 그 다음으로 말한 첫번째 낱말입니다. 발음하기 쉬운 단어도 아닐텐데...), "아따" (지난 봄, 매일같이 찾았던 '딸기'의 카이식 발음입니다. 한동안 모든 단어들에 접두사 "아"를 붙여서 말하곤 했습니다.), "물", "슈"(수박), "암맘마"(바나나), "치즈", "쥬스", "빵", "밥", "케차"(케찹),...

주변 사람들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도 말할 줄 압니다. "할머니", "하부지"(할아버지), "애기"(테이트를 부르는 말), "셰"(새), "문", "신", "책", "공"(동그란건 다 공입니다.), "아무"(나무), "시애"(글자와 숫자에 관심이 많은 카이는 당연하게도 시계를 참 좋아합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Vista 사이드바에 시계가 나타날 때까지 부팅하기를 기다렸다가 만화 동영상을 틀어주곤 했더니, 시계가 보이면 이렇게 외칩니다.), "아끙"('뚜껑'에 카이식 접두사가 붙고, 지맘대로 발음을 축약한 단어), "에-셔", "에이이셔" (이건 카이가 엄청 좋아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말인데, 말할 때마다 발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게 어느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두가지 중에서 어느걸 더 좋아하는지 파악이 안됩니다.)

또 얼마 전부터는 카이가 즐겨보는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도 부릅니다. Dora the Explorer에 나오는 "맵"(map), "배팩"(back pack), Maisy에 나오는 "매"(Maisy), "악어".

게다가 요즘은 두가지 단어를 합성한 말도 합니다. "물 크-"(이건 '분수'를 부르는 말입니다. 물이 크-하고 나온다는), "공뻥"(공을 뻥하고 찬다는 뜻), "셰 빵"(새가 빵을 먹는걸 보고 한 말).

최근들어 카이의 언어생활에서 가장 놀라운 발전은 "아니"(no)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집쟁이 카이에게는 참으로 쓸모가 많은 말입니다. "**에 갈래?", "** 먹을래?"라고 물었을 때,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어김없이 "아니"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좋다는 뜻이구요. 아직 "응"은 말하지 못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communication이 가능합니다. 아빠가 보고있는 올림픽 중계 말고 다른거(대개 만화)를 틀어달라고 할 때도 "아니", 만화를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다른 만화를 보고 싶어져도 "아니"입니다.

카이는 엄청 겁이 많거든요.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가보는 곳은 무조건 무섭다고 난리입니다. 자기가 잘 모르는건 무조건 일단 "아니"라고 거부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엄마아빠랑 Central Park Zoo에 갔는데, 늘 보던 평범한 새 말고는 다 무서워해서, 펭귄(Madagascar에 나온 바로 그 펭귄입니다)을 보러가도 "아니", 북극곰(영어로는 왜 North Polar Bear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북극에만 사는데...)을 보러가도 신기한 듯 쳐다보기는 하면서도 "아니"... 그것도 "아니, 아니, 아니"라고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며 거부하니까 도대체 뭘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카이 또래 친구들은 동물원을 다 좋아한다는데... 이상한 놈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카이 입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문장을 말하는데, 엄마아빠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외계어인지, 도무지 흉내도 내기 어려운 말들을 중얼중얼 꽤 길게 말하곤 하는데, 언젠가는 엄마아빠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바뀌어 나오겠지요. 사실 어제는 엄마랑 Dora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알아들을 수 있는 짧은 문장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부츠 어디찌?"라는. (부츠는 Dora 친구 원숭이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직 자기 이름 "카이"를 말하지 못합니다. 도무지 비슷한 흉내라도 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상한 놈입니다.

p.s. 동영상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얼마전 사재혁 선수가 역도에서 금메달 따는걸 보여주면서 역도 흉내를 내보라고 한 다음부터 "카이야, 역도해봐" 그러면 저렇게 두손을 번쩍 듭니다. (물론 자기 기분 좋을 때만 합니다.) 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까무러칩니다. 그리고 몇주전 일요일, 에스컬레이터를 태워주러 어느 극장에 갔었는데, 거기에 어른들이 보기에도 좀 무섭게 생긴 헐크 동상(왼쪽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다음부터 헐크 얘기만 꺼내면 무서워서 울먹입니다. 기억력 하나는 캡(요즘 말로는 킹짱왕)입니다. IQ 158짜리 아빠를 닮아서 천재인가 봅니다. :)

p.p.s. 2008년 8월에 찍은 사진들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Thursday, August 28, 2008

孝子 Tate



특별한 일만 없으면 June은 5시면 칼퇴근을 합니다. 예전엔 안 그랬었는데, 회사 직원들이 몇명 새로 들어오면서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그렇게 훌륭하게 바뀌었습니다. 28가의 회사에서 나와서 뉴욕의 퇴근시간 인파를 헤치고 Korean Town을 지나 Broadway를 따라 걸어서 (때로는 땀을 식힐겸 Macy's 백화점 내부를 통과해서) Port Authority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6시반에서 7시쯤 됩니다. Commuting에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합니다. 한편으론 아침저녁으로 버스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구요. (근데 버스에서 코를 골까봐 걱정입니다.)

저녁을 먹고나면 그때부터 밤 12-1시 무렵까지는 Boyeon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시간, 즉 June이 Tate를 책임지고, Boyeon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입니다. Kai 이맘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임무교대를 했었는데, 카이는 안겨있지 않으면 30분을 못 넘기고 깨어나서 울곤 해서, 거의 밤새도록 아빠엄마가 교대로 카이를 안은 채로 앉아있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랬던 형과 비교하면 테이트는 엄청난 효자입니다. 엄마가 9시쯤 젖을 물리고 난 후 자러 가면, 두세시간이 지나 배고파서 깨기 전까지는 대개 고이 잡니다. 아빠가 Similac Sensitive을 데워서 먹이고 나면, 또 한두시간 정도는 가뿐히 잘 때가 많습니다. 카이 때는 그토록 안나와서 모두를 힘들게 했던 트림도 테이트는 먹자마자 바로 끄윽- 우렁차게 잘 합니다. 사흘에 이틀 정도는 그렇게 평화로운 밤을 보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특별히 평화로운 밤이라서 아빠가 이렇게 블로깅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그리 효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엄마가 깨어나서 테이트를 돌보는 시간 동안에는 그렇게 몇시간씩 내리 자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엄마는 늘 잠이 부족합니다.)

누구 동생 아니랄까봐, 물론 전혀 평화롭지 않은 날도 많습니다. 어떻게 해도 울음을 그치치 않거나, 좀처럼 잠을 자지 않아서 몇시간동안 계속 안고 있어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빠는 한 팔에 테이트를 안은 채, 새로 산 iPhone으로 웹서핑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럴 때 쓰려고 샀습니다.) 엄마가 터득해낸 한가지 비법은 욕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물소리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러면 울음도 뚝 그치고, 금방 잠이 들기도 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면 별로 착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는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집은 수도세가 따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한번은 불을 다 끈 채로 dish washer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세면대 물소리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추측컨데,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듣던 소리랑 비슷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Check up을 위해 소아과에 가면,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또래 아이들의 data와 비교해서 알려줍니다. 첫 달에는 테이트의 키와 몸무게가 모두 다 또래 평균보다 작았는데, 그새 많이 커져서, 이번 달에는 키는 75%, 몸무게는 95%라더군요. 또래 아기들 100명이 작은 아이들부터 키 순으로 줄을 서면, 75번째라는 뜻입니다. 몸무게 순으로 서면 거의 맨 뒤에 가깝구요. 다행(?)인 것은 머리둘레 사이즈는 25%랍니다. 참고로, 카이 때는 키와 몸무게 모두 다 테이블 바깥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안으로 들어왔지만.

요즘 테이트는 잘 웃습니다. 갓난 아기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 아빠가 보기에도 테이트의 웃음은 참 예쁩니다. 갓 태어났을 때는 카이와는 약간 다르게 생긴 면들이 더 눈에 띄었는데, 날이 갈수록 카이와 더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카이도 자기가 갓난 아기였을 때 사진을 보면, "애기!"(카이는 테이트를 이렇게 부릅니다.)라고 합니다.

Tuesday, August 12, 2008

Green card is not green



그토록 기다리던 영주권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June의 영주권이 승인되었다는 email을 받은게 8월초. 일단 승인이 되고 나니까, 다른 때는 그토록 지지부진하던 이민국의 일처리가 갑자기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니, 1주일만에 영주권 카드가 날아오더군요. 뜻밖인 것은 '그린카드'가 초록색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왠지 속은 기분이 드는...)

여차하면 갑자기 쫓겨나게 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이주노동자의 불안한 처지에 (취업비자 신분에서는 직장에서 lay off를 당하는 경우, 그 날부터 30일 내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규정이 있거든요.) 늘 가슴졸이며 살았는데, 이제 큰 걱정거리를 한가지 덜었습니다. 꼭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걱정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거나, 보험을 들거나, 은행계좌를 열 때의 불편함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job 인터뷰를 할 때 비자나 영주권 스폰서를 해달라고 눈치보며 사정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또, 이제부터는 미국에 입국할 때도 Citizen 줄에 서서 들어올 수 있고, 복권에 당첨되어도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군요.

한가지 아쉬운 점은, Boyeon의 경우에는 작년에 영주권 신체검사를 할 때 임신중이어서 맞지 못한 주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서류를 보완해서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 그래도 일단 한 사람 꺼가 나오고 나니까 함께 신청한 사람 것도 시간만 지나면 나올 거라는 생각에, 예전처럼 걱정이나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다.

영주권을 받기 전에는 받기만 하면 날아갈 것처럼 기쁠 것 같았는데, 막상 받고나니 생각보다는 덤덤합니다. 물론 그래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좋습니다.

Monday, August 04, 2008

세계시민되기



Tate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어느 날, June과 Boyeon이 한가지 약속을 했었습니다. 사실 약속이라기보다는 June의 일방적인 선언에 가까웠지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donation을 할거야."
"왜?"
"그냥."
"어디에 할건데?"
"아직 몰라. 좋은 일 하는데."
"얼마를 할건데?"
"1000불."
"우와... 우리 짠돌이가 웬일이래?"

왠지 그렇게 하면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건 아니지만, 그 날 문득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당선되면 전 재산을 내놓겠다던 어느 나라 대통령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 몇십센트짜리 그로서리 할인쿠폰들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June에게 1000불이라는 돈은 엄청난 액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50센트짜리 할인쿠폰을 2천장 모아야만 생기는 돈을 선뜻 내놓겠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물론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유혹적인 순간도 한두차례 있긴 했습니다만, 뜻깊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일단 그렇게 결심한 이후로는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더군요.

이제 '누구에게 돈을 주느냐'가 관건인데, 이 부분은 June에게 time-consuming한 숙제이기도 하면서, 한편 재미있는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리서치를 하다보니 돈을 주고 싶은 단체들이 많아서, 자연스레 여러 단체에 조금씩 나눠서 기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기부할 곳 리스트'를 짜다보니, 정말 세계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아래는 그 리스트입니다.

The Smile Train
Donation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선단체 광고들이 참 많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직업상 평소에 광고를 눈여겨보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그 전에는 보지 못했었다는게 신기합니다. 무관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단체는 출퇴근 버스에서 읽는 Time 매거진에 실린 광고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저개발국가의 언청이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는 단체입니다. 저희도 이름모를 한 아이의 언청이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The Carter Center
몇년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터 전대통령이 설립한 재단입니다. 이 단체 역시 Time에 실린 그의 컬럼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아프리카 질병 치료를 비롯한 여러가지 일을 하더군요. 이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면 믿을만하겠다 싶어서 골랐습니다.

The Darfur Wall
여기는 몇달전 Darfur에 대한 기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곳인데, 모금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참 인상적이었던게 떠올라서 다시 찾았습니다. 돈을 내고 벽의 숫자에 불을 켜서 목표를 채워가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다른 자선단체의 웹사이트와 달리 스타일이 꽤 쿨합니다. 기부한 돈은 국경없는 의사회, Save the Children, Save Darfur, Sudan Aid Fund라는 4개의 단체에 나뉘어 전달된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100개의 숫자의 불을 켰습니다.

Save the Children
위의 4개의 단체들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다 보니, 이 단체는 Darfur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가난한 나라의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더군요. 처음 기부를 결심한 취지에 너무 잘 어울리는 단체라서 선택.

Amnesty International
예전에 우리나라 양심수들을 세상에 알리고 도와줄 때 참 고마웠었는데, 이젠 그 단체에 제 힘을 보탠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신이 나던지... 아예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온가족이 입을 T셔츠도 샀습니다. 글머리의 사진은 그렇게 구입한 옷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자세히 보면 앰네스티의 촛불 로고가 박혀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 뉴스에도 등장하던데, 제가 낸 돈이 제대로 working하는 거 같아서 더욱 흐뭇하더군요.

World Food Programme
다른 어디보다 북한 동포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요즘 다시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하던데... 그런데 요즘 많은 국제자선단체들이 Darfur, 그리고 중국과 버마('미얀마'라고 하지 말고 계속 '버마'라고 부르자는 움직임이 있더군요.)의 지진피해복구에 집중을 해서인지, 북한에 기부하는 옵션을 가진 자선단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정권이 바뀌어서인지, 요즘은 북한에 보내는 성금을 모으는 단체를 찾지 못했구요. 그러다가 북한관련기사에 가끔씩 등장하던 'World Food Programme'이라는 UN 산하기구 이름을 떠올리는데 성공했고, 이 단체에 전화를 해서 designation을 North Korea로 해서 기부를 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재미있었던건, 전화를 받는 사람 이름이 한국이름이어서 '이런 단체에서도 한국사람이 일하는구나'하는 생각에 물어보니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와서 인턴으로 일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돈을 보내고 나서 며칠만에 이 단체 홈페이지 헤드라인으로 "DPRK Deepening Hunger"라는 기사가 올라왔네요.

그 밖에 아주 작은 액수이긴 하지만, Obama 선거캠프와, 뉴저지주 경찰과 관련된, 이름에 굉장히 어려운 영어단어가 들어가는 무슨 fund에도 기부했습니다. 근데 고백하자면, 이 두 곳은 기부를 하면 보내준다는 자석과 스티커를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

그리고 사실 처음에 약속한 목표량을 아직 다 채우진 못했고, 100불쯤 남았는데, 이 재미있는 놀이를 끝내버리기가 아쉬워서 남겨두었습니다.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다 채울 작정입니다.

그나저나, 아까 잠깐 나왔던 그 대통령 말인데요. 그 대통령의 약속에는 또 주어가 빠졌었던 걸까요? 아니면 어디 또 맞춤법이 틀려서 약속 자체가 무효가 된 걸까요? 어쩌면 남은 100불을 한글학회에 기부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8년 7월에 찍은 사진들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