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9, 2008

Big brother Kai




테이트¹가 태어난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부른 엄마배를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만지고 놀던, 이제 겨우 스무달쯤 세상을 산 카이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이라는 존재가 반가울 턱이 없습니다.

20개월 평생동안 늘 제 곁을 지키던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날, 언제나 주위의 시선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황태자 카이는 하루아침에 찬밥—까지는 아니지만 암튼 더 이상 황태자라기엔 좀 불쌍해져버린—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엄마가 입원하기 며칠 전부터 아빠엄마로부터 '엄마가 카이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간다'는 설명을 여러차례 듣긴 했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요.

침대에서 꼼짝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테이트가 태어난 다음날부터 아빠가 카이전담반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출산휴가를 낸 아빠는 매일 아침마다 카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모자상봉을 시켜주고, 쇼핑몰에 데려가서 카이가 좋아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도 태워주고, 중간중간 맘마를 먹이고, 딸기²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Mommy & Me' 프로그램에도 같이 가서 다른 엄마들 옆에 뻘쭘하게 껴서 게임이랑 공작도 하고, Pottery Barn Kids에서 하는 Sing Along에도 가서 아웃사이더인 카이를 따라다니고... 그렇게 1주일을 보냈습니다. 처음 카이가 태어났을 때는 아기를 어떤 자세로 안아야 할지 몰라 쩔쩔 매던 아빠가, 이제는 좀처럼 점수가 후하지 않은 외할머니로부터 "아이랑 정말 잘 놀아준다"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빠의 노력도 카이가 받은 심리적 충격을 메워주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병원에서 엄마가 테이트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을 카이가 보게 되었고, (물론 보자마자 카이는 울음을 터뜨렸지요.) 그때 받은 충격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동안 카이는 밤에 자다말고 여러차례 울면서 깼는데, 아빠 눈에는 엄마를 빼앗긴 충격 때문인 것 같아보여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낮에는 비교적 잘 지내기는 했지만, 잘 놀다가도 "카이 오늘 병원에 가서 동생 보고 왔지?" 이렇게 동생 이야기만 꺼내면 갑자기 딴청을 피우거나, 마치 듣기 싫은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려는 것처럼 굴더군요.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마도 충격을 준 요인을 일단 외면하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자기방어기제가 작용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닷새만에 엄마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의 카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첫 반응은 너무나 의외라는 놀란 표정,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한 웃음과 함께 춤을 덩실덩실 추더군요. 그런 카이를 보고 엄마와 아빠에게 동시에 든 생각—카이는 엄마가 자기를 영영 떠나서, 갑자기 나타난 쬐끄만 놈이랑 함께 병원에서 계속 살거라고 생각했겠구나 하는. 그 생각을 하니 더더욱 카이가 안쓰러웠습니다. 엄마는 카이가 가엾다며 계속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암튼 그날 저녁 내내 카이는 엄마와 아빠와 외할머니를 자기 곁에서 조금이라도 떠나질 못하게 잡아두며, 테이트가 형한테 가져온 선물이라고 전해받은 장난감 노트북을 가지고 행복하게 놀았습니다.

차차 괜찮아지긴 하겠지만,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오늘까지도 카이는 여전히 동생이라는, 지금껏 자기가 만난 인생최대의 라이벌에 대해서 퍽 민감합니다. 테이트가 울어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아기에게 달려갈라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테이트가 자는 동안 모든 식구들이 자기 곁에서 관심을 집중해주면 더 없이 행복해 합니다.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동생한테 가는 할머니나 엄마와는 달리, 그래도 아빠는 '빼앗기지 않은 자기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요즘은 매일 아침 아빠가 출근할 때마다 눈물의 이별을 하곤 합니다. 아빠 마음도 찢어집니다.

테이트가 태어난 이후 며칠동안 찍은 사진들을 더 올렸습니다.


¹ Tate라는 이름을 지을 때, Kai처럼 한국사람들 입에 딱 떨어지는 발음이 아니라는 점에 약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한인 2세들 중에서 Ethan이나 Matthew처럼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나중에 엄마 발음이 창피하다고 남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런 난이도 높은 이름들에 비하면 Tate는 그래도 우리가 발음하기 아주 쉬운 이름이지요. 실제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옮기자면 '테잍'이라고 써야겠지만, 자연스러운 표기를 위해서 한글로는 '테이트'로 쓸 작정입니다.

² 언젠가부터 카이의 favorite food가 되어버린 딸기. 카이는 "아따"라고 부르는데, 냉장고에서 이게 떨어지는 날이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딸기는 껍질도 없이 농약에 그대로 노출되는 과일이라서 꼭 유기농 딸기를 사다 먹이는데, 문제는 유기농 딸기는 아무데서나 팔지 않고, Whole Foods나 Trader Joe's같은 organic food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수퍼마켓에서만 판다는거. 오늘도 이게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빠는 퇴근길에 유기농 딸기 3팩을 사왔습니다.

4 comments | 댓글 읽기/남기기:

Anonymous said...

안녕하세요.. 민지엄마입니다.
카이도 그동안 많이 자랐군요..
언니 아기 낳느라 고생 많이했어요..
전 부모님께 갔다온지 한달하고 보름정도 되어가네요.. 아기보니 너무 새삼스럽네요.. 카이도 테이트도 너무 이뻐요..
보고싶네요. 참 그리고 카이는 아빠랑 진짜 붕어빵이네요. 사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하... 둘째는 언니 많이 닮았을 거 같아요. 암턴 산후조리 잘 하시구요.. 언제 아기 함 보러가야할텐데... ^^ 그럼 또 연락드릴께요.. ^^

제인엄마 said...

첫 아이의 스트레스, 엄마아빠의 상상을 초월한다네요.
유명한 표현이 있지요. 동생을 본 첫 아이의 충격은 후처를 데리고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본처의 충격에 맞먹는다나 어쩐다나...
다행히 카이를 가엾이^^ 여겨 눈물 흘려주는 엄마가 있으니 서서히 적응해가겠지만서도.
동생에 대한 '애증'의 양면성을 인정해주세요.
아빠가 이 기회에 카이의 마음을 화악 사로잡아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거지요 ㅎㅎ.

June said...

승민씨 진짜 오랜만이네요. 제인이가 벌써 여섯살이라니... 보고 싶네요. 저희는 그집 부부가 뉴욕에 있을 때 더 자주 어울리지 못했던걸 종종 후회하곤 합니다.

후처를 데리고 왔을 때의 충격의 100배라는 말도 있더군요. 암튼, 19개월 동안 엄마가 조금이라도 곁에 없으면 큰일나던 놈이 동생본지 3주만에 그 대상이 아빠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엄마가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Boyeon said...

예희씨, 여행 잘 갔다왔어요? 민지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예쁜 짓 얼마나 많이 했을지 안봐도 비디오예요. 두분 사랑 듬뿍 받으면서 필리핀의 햇빛을 만끽하고 왔을 두 모녀, 조만간 함 봐야죠.

승민씨, 이미 카이에게 첫번째 자리를 아빠에게 빼앗겼답니다. 아빠가 안고서 이동을 할라치면 "엄마, 엄마~~"하면서 불러대던 카이가 이제는 엄마는 쳐다도 안보고 아빠만 따라가구요... 아빠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아빠, 아빠~" 소리치며 난리가 난답니다. 엄마가 안보이는건 괜찮아도 아빠가 자기 눈 앞에서 사라지는건 용납이 안되는거죠. 근데 또 그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구요. 서운해하는 저에게 울엄니께서 하신 말씀, "자식은 평생 짝사랑이란다.." 그 말을 이렇게 일찍 실감할 줄은 몰랐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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